“함께 출연하는 남자 배우들보다 저만 6주나 더 길게 운전 연습을 하라는 일정을 받았어요. 정말 모욕적이었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를 갖는가?
대히트한 영화를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여성이 세상을 구하거나 대단한 일을 해내려면 보통 이상의 능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원작 '고스트버스터즈'만 해도 네 명의 남자들은 그리 잘난 게 없었다. 리메이크의 여성들과 똑같은 보통의 인간들이다. 별 거 아닌 보통의 남자들은 그동안 세상을 구하고, 엄청난 일을 하면서 영화와 소설에 등장했다.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고스트버스터즈'는 별 것 아닌 역할교대로도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이제 보통의 여성들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남자들은 더욱 멋있어질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걸작이 된 영화나 노래를 보고 들으며 당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상상한다 해도 근원적인 한계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래 산 이들이 무조건 우월하고 깊이가 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각자에게는 각자의 시대가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왔을 때, 그들에게 열광하며 한 시대를 보낸 이들에게는 다른 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 있다. 누구나 그렇다. 살아가면서 퀴퀴한 극장에서 과거의 영화를 보며 빠져든 경험이 모든 것인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당대의 문화예술에 매혹되며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고 살아왔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암살>,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의 공통점은 일단 여성 액션의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여자 배우의 액션 장면 비중 이상의 공통점이 영화를 묶고 있다. 우선 이들 영화에서 액션을 펼치는 여자 주인공들은 공식적인 주인공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매드 맥스>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 영화판은 모두 1인 남성 주인공 중심의 프랜차이즈이고 이 시리즈에서는 이전까지 여성 비중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었다. <암살>의 경우 홍보에서 앙상블 위주의 영화임을 내세웠다. 다들 영화를 보고 나서야 홍보했던 것보다 여성 비중이 훨씬 높았음을 알 수 있는 영화들이다.
박평식이 놀라운 건 많은 평론가들이나 기자들이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만든다는 이유로 암묵적인 보너스 점수를 주는 독립영화나 저예산 영화에도 매서운 칼날을 휘두른다는 점이다. 2010년작 독립영화 <나의 불행에는 이유가 있다>에 별 하나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라는 평을 썼다. 한마디로 귀천을 따지지 않고 똑같은 잣대로 혹평을 휘두르는 평론가라 하겠다.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페미니즘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 상당수가 페미니즘 영화를 일대일 상징으로만 이루어진 지루한 영역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여 심히 걱정스럽다는 말은 해야겠다. 적어도 내가 전에 체크했을 때 이 세계는 훨씬 역동적이고 다양한 곳이었다. 쉽게 분류될 수 없는 입체적이고 불완전한 여성들이 쉽게 분류될 수 없는 입체적이고 불완전한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는 이 영화의 페미니즘 자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